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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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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매력은 아름다운 항구와 거리, 도회적인 스포트, 해변 등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비교적 아담한 범위 안에 그 모든 것이 담겨져 있어 관광객에게는 더 반갑다. 서큘러 키에서 세계 3대 미항인 항구 모습에 감동하고, 달링 하버에서는 수족관과 쇼핑 센터를 둘러본다. 거리 산책이 끝났다면 본다이나 맨리 등의 해변으로…. ‘하루만 더 있고 싶은 도시’, 그곳이 시드니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시드니에서 시작되었다. 1788년 최초의 이민선단이 상륙했던 곳이 바로 서큘러 키로, 이민자들은 이곳부터 대륙의 안쪽을 향해서 개척을 시작했다. 서큘러 키에서 건너다보면 오른쪽에는 거대한 흰 조개껍질을 연상시키는 오페라 하우스가 위용을 자랑하며, 왼쪽에는 ‘코트 행어’라는 별명을 가진 하버 브리지가 완만한 호를 그리며 맞은편 만으로 뻗어 있다. 시내를 걸으면 고층 빌딩이 빽빽이 서 있고, 더블 베이나 로즈 베이 등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고급 주택가가 있으며, 교외인 본다이나 맨리에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해변도 있다. 확실히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라는 명성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전망이다. 그러나 이 세련된 경관 뒤에는 이민자들의 고난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이민자들이 최초로 도시를 만든 곳은 록스이다. 지금은 관광명소로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지만, 시드니는 불과 200년 전만 해도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들판이었던 곳이다. 바위를 깨고, 길을 만들고, 교회나 관공서를 세운 것은 영국에서 끌려온 죄수들이었다. 노동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토지는 정비되지 않았고, 죄인들은 농업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식량마저 늘 부족했다. 더욱이 본국 영국으로부터는 2년 이상이나 배가 오지 않았다. 자급자족의 목표가 세워지기 시작한 때는 18세기말의 일이다. 그후 1820~30년대가 되자 목양업이 발전, 시드니는 번영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이후 시드니는 오스트레일리아 제1의 도시로 발전했다. 수도는 아니지만 라이벌인 멜버른을 제치고 경제의 중심지로서 군림하고 있다.
역사 1770년 제임스 쿡이 동쪽 해안에 도착. 보타니 만에 상륙. 1786년 영국정부가 보타니 만에 유형식민지(NSW 식민지)를 건설할 것을 결정. 1788년 아서 필립이 이끄는 제1차 식민선단이 시드니 만에 상륙, 식민지 건설을 시작. 1850년 철도가 착공되고, 시드니 대학이 창설. 1851년 시드니 근교의 바터스트에서 금이 발견되어, 골드 러시가 시작. 1883년 시드니와 멜버른 사이에 철도 개통. 1901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이 성립되어, 멜버른과의 수도 정하기 쟁탈전 발생. 1927년 캔버라가 수도로 정식으로 결정. 1932년 하버 브리지 완성. 1974년 오페라 하우스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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