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 데뷔 20년의 빛과 그림자…"화려한, 그러나 외로운" | 2008/10/03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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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데뷔 20년의 빛과 그림자…"화려한, 그러나 외로운"
스포츠서울 | 기사입력 2008.10.03 10:21
[스포츠서울닷컴ㅣ임근호기자]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저 화려한 빛만 바라보며 동경했을 뿐. 속 깊숙히 드리운 외로운 그림자에 대해서는 알 수도,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故 최진실이 2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초 경찰서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사인은 의사. 목 맨 자살이다. 세상 사람에게 섭섭하다는 푸념과 남은 아이를 잘 돌봐 달라는 바람을 남기고 그렇게 먼저 떠났다.
사실 고인은 그 누구보다 강했다. 아니 그 누구보다 잘 견뎌냈다. 이겨냈다. 그래서 최고 배우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수많은 루머와 싸울 때 마다 수많은 고통을 혼자 감내한 것이다.
데뷔 20년, 그를 환하게 비추던 빛과 어둡게 드리웠던 그림자를 살펴봤다.
◆ 빛 : 최고의 배우
'국민요정'에서 '줌마렐라'까지. 최진실에게 한계는 없었다. 1988년 데뷔 이후 수십 편의 드라마와 영화, CF 등에 출연하며 끊임없이 변신했다. '정체는 배우의 독'이라며 매 작품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여러가지 색깔을 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최진실의 진화는 작품을 통해 증명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카피로 귀여운 이미지에 갖혀있을 무렵 그는 영화 '남부군'(1990)을 통해 강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최진실에게 이런 면이?"라는 반응이 나오기 무섭게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를 통해 다시 깜찍한 모습으로 복귀했다.
연기의 스펙트럼은 92년 이후 더욱 넓어졌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을 통해 가슴을 쓸어 내리더니 '미스터 맘마'(1992)를 통해 억척스러운 이미지도 선보였다. '마누라 죽이기'(1994)에서 배꼽을 빼앗더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을 통해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방송에서의 활약은 더 대단했다.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 특히 1992년 최수종과 함께 찍었던 '질투'(1992)는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트렌드 드라마의 전설로 남겼다. 이 외에도 '폭풍의 계절'(1993), '별은 내 가슴에'(1997), '그대 그리고 나'(1998),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 등을 통해 '국민요정'에서 '줌마렐라' 열풍을 이어갔다.
◆ 그림자 : 끝없는 루머
하지만 빛이 강한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세상은 그를 진실없는 루머로 곤경에 빠뜨렸다. 첫 시련은 1994년에 찾아왔다. 자신을 키운 매니저 배병수가 로드 매니저인 전모씨에게 살해되며 악성루머에 시달린 것. 특히 최진실이 법정 증인으로 나서며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4년 뒤에는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할 뻔 했다. 촬영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던 중 30대 중반의 괴한에게 목을 잡힌 것. 당시 괴한은 칼로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했다. 다행히 이상한 낌새를 챈 매니저가 뒤따라 올라와 위기를 모면했다.
여자로서도 불행했다. 2000년 12월5일 5살 연하의 야구선수 조성민(당시 요미오리 자이언츠)과 결혼하며 세상을 놀래켰지만 결국 2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조성민의 폭행 사실이 드러나고 상처입은 최진실의 얼굴이 공개되며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5년 주기로 찾아온 상처. 언제나 피해자는 최진실이었지만 떠도는 소문은 달랐다. 실체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쓸데없는 루머로 최진실을 괴롭힌 것. 그를 마지막으로 끌고 간 故 안재환 사채설도 그랬다. 터무니없는 소문과 댓글이 20년간 버텨온 삶을 더욱 피로하게 만들었다.
배우로서 그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최진실. 그러나 여자로서 그 누구보다 어두운 생을 보냈기에 그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마지막 안식을 택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그녀의 마지막 하소연이 더욱 가슴 아픈 이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故 최진실이 2일 새벽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초 경찰서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사인은 의사. 목 맨 자살이다. 세상 사람에게 섭섭하다는 푸념과 남은 아이를 잘 돌봐 달라는 바람을 남기고 그렇게 먼저 떠났다.

데뷔 20년, 그를 환하게 비추던 빛과 어둡게 드리웠던 그림자를 살펴봤다.

'국민요정'에서 '줌마렐라'까지. 최진실에게 한계는 없었다. 1988년 데뷔 이후 수십 편의 드라마와 영화, CF 등에 출연하며 끊임없이 변신했다. '정체는 배우의 독'이라며 매 작품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여러가지 색깔을 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했다.
최진실의 진화는 작품을 통해 증명된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카피로 귀여운 이미지에 갖혀있을 무렵 그는 영화 '남부군'(1990)을 통해 강한 이미지로 변신했다. "최진실에게 이런 면이?"라는 반응이 나오기 무섭게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를 통해 다시 깜찍한 모습으로 복귀했다.
연기의 스펙트럼은 92년 이후 더욱 넓어졌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을 통해 가슴을 쓸어 내리더니 '미스터 맘마'(1992)를 통해 억척스러운 이미지도 선보였다. '마누라 죽이기'(1994)에서 배꼽을 빼앗더니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을 통해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방송에서의 활약은 더 대단했다.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 특히 1992년 최수종과 함께 찍었던 '질투'(1992)는 시청률 40%를 기록하며 트렌드 드라마의 전설로 남겼다. 이 외에도 '폭풍의 계절'(1993), '별은 내 가슴에'(1997), '그대 그리고 나'(1998),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2008) 등을 통해 '국민요정'에서 '줌마렐라' 열풍을 이어갔다.

하지만 빛이 강한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세상은 그를 진실없는 루머로 곤경에 빠뜨렸다. 첫 시련은 1994년에 찾아왔다. 자신을 키운 매니저 배병수가 로드 매니저인 전모씨에게 살해되며 악성루머에 시달린 것. 특히 최진실이 법정 증인으로 나서며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4년 뒤에는 괴한으로부터 납치를 당할 뻔 했다. 촬영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던 중 30대 중반의 괴한에게 목을 잡힌 것. 당시 괴한은 칼로 위협하며 납치를 시도했다. 다행히 이상한 낌새를 챈 매니저가 뒤따라 올라와 위기를 모면했다.
여자로서도 불행했다. 2000년 12월5일 5살 연하의 야구선수 조성민(당시 요미오리 자이언츠)과 결혼하며 세상을 놀래켰지만 결국 2년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조성민의 폭행 사실이 드러나고 상처입은 최진실의 얼굴이 공개되며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5년 주기로 찾아온 상처. 언제나 피해자는 최진실이었지만 떠도는 소문은 달랐다. 실체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쓸데없는 루머로 최진실을 괴롭힌 것. 그를 마지막으로 끌고 간 故 안재환 사채설도 그랬다. 터무니없는 소문과 댓글이 20년간 버텨온 삶을 더욱 피로하게 만들었다.
배우로서 그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살았던 최진실. 그러나 여자로서 그 누구보다 어두운 생을 보냈기에 그는 스스로 죽음으로써 마지막 안식을 택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그녀의 마지막 하소연이 더욱 가슴 아픈 이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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